SHC(Spontaneous Human Combustion) = '인체 자연 발화'라는 현상. 이것은 있을 때 갑자기 살아있는 인간이 3000도 이상의 창백한 불꽃을 올리고 타 버립니다 발목정도 밖에 남지 않는 현상이다. 이것은 알콜중독이나 헤비 스모커에 많은 것 같지만, 결코 담배가 원인인 것이 아니라 의류중에서 발화있는 것이 매번 확인되고있다. 이 같은 사건이 전세계 500개 정도 보고 되고 있어 원인이 알려져 있지 않다. 이와 비슷한 현상이 다른 곳에서도 일어나고있다. 남극 크릴라는 큰 플랑크톤을 대량으로 낚아 배의 갑판에 쌓아두면 타 버리는 일이 가끔 일어난다. 이것도 원인이 알려져 있지 않다. 시베리아의 겨울은 영하 50도C 정도 온도가 내려 지하 150미터 정도까지 얼어 버린다. 시베리아에는 원시림 타이가 생식하고 있지만,이 추운 중에서도 타이의 낙엽송 나무줄기속에 가지중 0℃ 이상이다. 만약 0를 나눈다면 나무는 고사. 온도차 50 게다가 100킬로그램 경황없는 그 거구에서 먹은 탄수화물을 열하는 일도 할 수 없다 낙엽송이 어떻게 0 이상을 유지할 것인가? ! 낮에는 수평선에서 오는 햇빛은 그나마 도움은 되어 있지만, 그것은 매우 낮조차도 영하 50 하에서 0 이상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열량에 훨씬 못 미친다. 하물며 밤 어떤 열원도 없는데 0 이상을 유지할 이유는 현대 물리학 · 현대 생물학에게는 전혀 신비이다.  보통 모든 인간이 후광에 싸여있다. 플라즈마는 일반적으로 예를 들어 단단한 금속을 가열과 걸쭉한 액체가되고, 더욱 가열하면 기체가되어, 더욱 가열 및 각 원자의 원자핵과 궤도 전자가 붕괴된 상태의 플라즈마가된다. 이 원자핵과 궤도 전자가 붕괴된 상태가 생물의 몸 주위에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 맹렬한 에너지는 어디에서 오는가? 즉 먼저 태양이 에테르를 가져와 에너지 = 질량의 보충을 하고있는 것을 보았지만, 생명체는 필요에 따라 에테르를 가져와 에너지에 이바지할 수 있다고 하는 것 외에 상술한 몇 개의 현상은 설명이 되지 않는 것이다. 


인간이 만든 로봇이 생명체에 한참 뒤떨어져 있다. 생명체의 몸 속에서 에테르를 포함하려면 질량의 큰 원자의 미네랄이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며 보충제로 무기물에서 따온 미네랄보다 훨씬 미량에서도 살아 야채에서 따온 미네랄이 훨씬 효과를 나타내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또 햇빛을 받으면 리놀레산 리놀렌산에서 변화하여 만들어지는 에이코 펜타엔산(EPA) · DHA가 더욱 변화하고 창출된 에이코사노이도 · 디펜 신이 필요한 경우 대량 가져온 에테르 에너지를 이용하여 항상성(신체의 균형이 무너지면 그것을 체계적으로 실행 취소 기능의 것) · 면역 체계를 관리하는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필요에 따라 에테르로 가져온 대량의 에너지를 이용하여 디펜신이 항상성 · 면역 체계를 체계적으로 담당하는 것이기 때문에 현대의학이 생화학적 현상만을 보고 그 1점인가 겨우 몇 점을 붙어 인공적인 의약 물질을 만들어 투여하여도 모든 디펜신에 외적으로 간주되어 의약 물질 "효과"를 말살해 버리는 것은 당연하고, 의학의 측면이 말살되지 않는 만큼 강력한 부작용이 강한 극약을 투여하거나 또는 항상성 면역력을 죽여 버리고 인공 의약 물질의 효과를 올리려는 시도는 그야말로 바보라고 이외에는 없다. 생체의 체계적인 인과의 사슬을 전혀 보지 않으니까 현대 의학은 과학이 아니다. 과학은 인과 관계를 파악하는데 그 사명이있다.


바로 '할수 없다 "고 말하는 사람은 겸손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없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교만이다. 이 세상에 뭔가를 지적하면 바로 "자신에게 그것이 없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언뜻 보면 그 사람은 자신이 없어서 정말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도이 사람은 무엇을 해도 낭비라고 생각하고 포기하게 됩니다. 그러나 아무일도 바로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정말 자신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정말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도도한것 뿐이라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왜냐하면 지적된 것을 진심으로 받아들여 자신은 잘못이라고 인정하고 그 실수를 고치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없다"가 아니라 "노력할게요"것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노력 할게요"라고하지 않고 바로 "없다"고 대답은 그 지적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있지 않거나 받아 싶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이며, 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인지, 받아 싶어 없는 것인지라고하면 그 사람이 교만 때문입니다.그러므로 만약 자신이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으로부터 지적되어 "할수없다"고 생각하거나 "할 수 없다"고 입으로 말하는 것이 많은것 같다면 일단 멈춰서서 냉정하게 생각해보십시오. 혹시 자신은 교만하지는 않을까,라고. 원래 잘할수 없다 "고 말하는 사람에 한하여 자신을 겸손한 인간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할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진정으로 겸손하지 않습니다. "할수없다"고 생각하기 전에 먼저 어떻게하면 그 지적을 치료할 수있는 것인지, 진지하게 생각해야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겸손입니다. 내 경험으로는 오히려 "있다"고 자신 만만하게 말하는 사람 쪽이 오히려 자신의 실수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그 실수를 고치려고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정말 겸손하기도합니다. 나로서는 조금이라도 잘난 듯하게 뽐내고 있어도 진심으로 자신의 실수를 인정받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런 사람과 함께 일을 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같은 것이 아닐까요. 무엇보다 겸손하고 계속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도 굳이 그 어려운 길을 갈 때야말로 진정한 성공의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실현의 시대. 겸손한 사람일수록 무엇이든 도전하려고 움직이고 있다. 이기에 이르러 "할 수 없는 이유"만을 생각, 즉시 "무리"라는 사람 일수록 현실과 불일치 하는 생각이며. 겸손한 사람은 현실에 대한 불일치감도 제대로 마주하고 어떻게든 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