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 위구르 자치구는 중국 서쪽에 위치한 인구 약2000만 절반이 무슬림의 위구르족이 차지하고 있는 특수한 지역입니다. 중국 왕조였던 시절에는 중국과 몽골유목 민족의 압력을 받으면서 독립과 종속을 반복했습니다. 이 지역에 있는 누란이라는 고도는 실크로드의 무대로도 유명한 곳입니다. 그러나 1949년 중국 공산당이 정권을 잡은 이후는 완전히 중국에 병합된 1955년 신장 위구르 자치구라는 명칭으로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중국 당국은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대량의 한족을 이주시켜 인구 비율을 역전 시키려하고 있고 정치와 경제등 주요 분야에서 한인이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중국은 명분 상 종교를 부정하는 사​​회주의 국가이므로, 이슬람교의 활동에 대해 항상 감시하에 두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일부 주민은 중국 통치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중국에서 분리 독립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2009년 폭동 약200명 사망. 2009년 신장 자치구의 우루무치에서 한족에 의한 위구르족의 습격 사건을 발단으로 한 격렬한 폭동이 발생해 중국 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약 200명이 사망했습니다. 당국은 폭동을 선동했다고 위구르족 9명을 처형했으며 수백명이 구속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올해도 경관대와 활동가의 충돌이 여러번 일어나고 있습니다만, 신장 자치구의 속사정은 외국의 언론이 취재할수 없기 때문에 많이 공개되어 있지 않습니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주민 상호 감시하고 밀고 시키는 구조. 현재 반상회와 그 자취)와 유사한 제도를 도입하고 주민을 감시하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중국은 티벳에서도 비슷한 문제를 안고있어, 10월에는 유엔인권 이사회가 중국에 대해 티베트나 위구르 자치구등의 소수 민족의 권리 보호를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중국 측은 "국가를 분단하는 행위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하고 반체제 활동을 탄압하는 것은 정당한 행위라고 입장을 무너뜨리고 있지 않습니다. 과거 서방 국가는 중국의 이러한 인권 탄압을 강하게 비판하고있었습니다만, 현재는 대국이 된 중국과의 경제 협력을 우선하고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는 묵인하고 있습니다.


중국인은 역사적으로 북방과 서방의 준비를 완벽하게 하지 않으면 중국을 지킬 수 없다는 생각을 강하게 가지고 있으며, 신장 위구르 자치구는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또한 일부 민족의 독립을 인정해 버리면  소수 민족이 일제히 중국 정부에 반기를 드는 것을 염려하여 당국은 이러한 사태를 강하게 우려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상당한 일이없는 한이 지역의 독립을 인정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원래 동투르키스탄이 신강이라고 호칭된 것은 대청 제국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후, 수많은 민족끼리의 마찰을 경험하면서 1912년의 신해혁명에 의해 건국된 중화민국에 두고, 신장성이 놓여 있었다. 1949년 중국 공산당은 신강의 접수를 실시하기 위해서, 등력군을 파견하여 이리 정부와 협상을 벌였다. 모택동은 이리 정부에 서한을 보내 로스트 경영진을 베이징의 정치협상회의에 초대했다. 그러나 8월 27일 , 베이징으로 향한 이리 경영진이 탄 비행기는 소련 영내에서 소식을 끊어지고(현재도 원인 불명) 지도자를 잃은 이리 정부는 혼란에 빠졌다. 남겨진 이리 정부가 급히 정치 협상회의에 가서 공산당에 복속을 표명했다. 9 월 26일에는 부루항 · 샤히디들의 신장성 정부 간부들도 국민 정부와의 관계를 끊고 공산당 정부에 복속하는 것을 표명했다. 12월까지 인민 해방군이 새로운 영역을 확장하고 동투르키스탄 완전히 중화인민공화국에 통합시겼다. 1955년에 민족지역 자치의 적용을 받고 신장 위구르 자치구가 되었다.


또한 중국정부는 현재도 신장성을 호칭하고 공산당의 통치를 인정하지 않고 중공의 정책을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불만을 배경으로 중국 내외의 운동 조직이 투르크계 주민의 중국에서의 분리독립을 주장하고 중국 통치의 틀안에서 민족 자치의 확대와 인권 상황의 개선을 목표로 활동과 함께 광의의 독립 운동으로 언급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해 중국 정부는 서부개발로 상징되는 대규모 경제 부양을 신강에 실시하고 주민의 생활 수준을 향상시킴으로써 독립 기운의 진정을 도모하는 한편, 분리주의에 결합되는 것으로서 민족주의를 고취하는 동향에 대해서는 과잉 엄격한 단속을 실시하고 있다.